삼춘 1화|메시지의 전달
낮에는 따뜻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날씨다.
환경 변화 탓인지 11월인데도 그렇게 춥지는 않다.
까똑, 까똑.
까톡, 까까톡.
퇴근을 앞두고 휴대폰이 연신 울린다.
중원은 카톡음을 뒤로한 채 열심히 메일을 써 내려갔다.
계속 울리는 소리에 한 번씩 머리를 흔들면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문장을 마무리하다 말고 잠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궁금하긴 했다.
그래도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문장을 끝내고 엔터.
그리고 경쾌하게 Send 버튼을 눌렀다.
메일이 제대로 발송됐는지 보낸 편지함까지 들어가 확인한다. 자신이 보낸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읽어본 중원의 얼굴에 꽤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제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메시지가 세 개 와 있었다.
“중원씨! 오늘 머해?… 나 맛집 알아냈어~! 오늘 한잔 해~~~”
“뭐야~~ 왜 답이 없어.”
“보면 톡 주세요~”
중원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닉네임.
소울메이트.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대화창을 위로 올려봤다.
마지막 메시지를 주고받은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6개월 전.
“간만이네. 웬일이지.”
중원이 혼잣말을 하며 답장을 썼다.
“응. 오랜만이네.. 맛집? 어딘데? 메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뭐니~”
중원이 피식 웃었다.
“미안.. 메일 좀 보내느라고.”
곧바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전화할게.”
“응.”
잠시 후 휴대폰이 진동했다.
중원이 전화를 받았다.
“어이. 어쩐 일인가.”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 오늘 별일 없으면 한잔합시다. 맛집 알아두었거든.”
그렇게 둘은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역 출구를 빠져나온 중원은 약속한 상점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6개월 만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중원씨~~! 잘 지냈어?”
“응. 왔어? 그냥 마지못해 살아.”
중원이 멋쩍게 웃었다.
“웬일로 전화를 다 주셨대. 뭐 사줄 건데?”
“따라와~.”
그녀가 웃으며 앞장섰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중원씨가 사야지~ 내가 맛집 알아봤으니까.”
중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두 사람의 인사는 자연스러웠다.
아마 이런 만남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란히 걷던 중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다.
중원은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3년 정도 만났을 무렵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이 길어지면서 둘의 관계도 조금씩 멀어졌다.
결국 헤어졌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2년쯤 지나 우연처럼 다시 만났고, 술을 마셨고, 그날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서로의 체온은 낯설지 않았다.
그 후부터 이상한 관계가 시작됐다.
가끔 연락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술자리가 끝날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함께 밤을 보내곤 했다.
연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남도 아니었다.
그런 관계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연락을 끊었다.
중원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6개월.
오늘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뭐 하고 지냈어?”
그녀의 목소리에 중원이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늘 같아~ 회사, 집. 가끔 술, 가끔 골프. 경조사 가고 모임 있으면 모임 가고. 단조롭지.”
“그만하면 재미나게 사네.”
그녀가 옅게 웃었다.
“그런가? 근데 재미없어.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싶고.”
“다들 그렇게 살아. 그것도 못 하고 사는 사람 많아.”
그러다 그녀가 한곳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뻗었다.
“여기다!”
중원이 간판을 올려다봤다.
“홍어…라.”
그녀가 중원의 얼굴을 살폈다.
“홍어 먹지? 나 요즘 홍어회에 빠져서~.”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중원의 팔짱을 꼈다.
“들어가자.”
“응. 가리는 건 없어. 찾아 먹지는 않아도 먹긴 먹지.”
두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주와 술을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에 홍어회가 올라왔다.
맛있게 홍어를 먹고 있는 그녀를 보며 중원이 툭 던졌다.
“안 본 사이에 많이 늙으셨어.”
그녀가 눈을 흘겼다.
“그래 보여? 요즘 많이 느껴. 뭘 해도 안 이뻐.”
“분칠한다고 빛날 나이는 아니잖아.”
중원이 웃었다.
“그래도 아직 나 좋다는 사람 많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녀의 시선은 중원을 향하고 있었다.
“그 미모 어디 가겠어? 그리고 당신은 남자 없으면 못 살잖아. 만인의 연인이니까.”
또다시 눈을 흘긴다.
“중원씨는 언제나 그 얘기더라. 예전에 만날 때도 그러더니. 쯧쯧. 안 변해.”
“그랬나?”
중원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나 살도 많이 쪘지? 옷도 안 맞아서 아무거나 입고 다녀.”
중원이 그녀를 아래에서 위로 한번 훑어봤다.
“뭐, 나이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녀가 술잔을 부딪쳤다.
“여전히 솔직하네.”
“그럼 뭐라고 해.”
둘은 웃었다.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가 술잔과 함께 오갔다.
회사 이야기, 사람 이야기, 사는 이야기.
9시가 다 돼서 만났는데 테이블에는 어느새 빈 소주병 네 병과 맥주병 두 병이 놓여 있었다.
중원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 40분이네. 일어설까? 여기서 마시고 끝낼까?”
“2차 갑시다. 간단하게 입가심하고 가야지.”
중원이 그녀를 바라봤다.
문득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오늘도 자고 가려나?
“이… 이차?”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그냥 가려고? 오랜만에 만나서 이렇게 간다고?”
“아니. 가야지~ 내가 왜 안 가.”
중원이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둘은 근처 실내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자정을 조금 넘겨 술자리가 끝났다.
밖으로 먼저 나온 중원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계산을 마친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잘 먹었어.”
중원이 담배 연기를 내뿜다가 문득 물었다.
“참. 어디 살아? 아직 수원에 살아?”
“수원?”
술기운이 오른 목소리였다.
“응. 아직은. 곧 이사할 거야.”
중원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어디로?”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중원을 바라봤다.
“중원씨.”
“응?”
“우리 자러 갈래?”
중원의 표정이 멈췄다.
“자고 싶다. 중원씨랑.”
중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무언가를 느꼈다.
오랜만인데도 서로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문제였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어느 순간 말을 멈추는지, 어떤 표정을 지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몸보다 기억이 먼저 상대를 알아봤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오래전 연인이었던 시절처럼 서로를 안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하니?”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었다.
“와~ 역시 중원씨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 해.”
“…….”
“언제 알았어?”
“음…… 자러 가자고 할 때?”
중원이 잠시 생각하다 말을 고쳤다.
“정확히 얘기하면 너한테 전화 올 때.”
“내가 목소리가 떨렸었나? 왜 티가 났어?”
“사람은 목소리에서 많은 걸 알 수 있어.”
중원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사람 목소리가 있어. 아무리 밝게 얘기해도, 슬프게 얘기해도 그 소리는 안 변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튼…… 누군데?”
“응?”
“신랑 될 사람.”
그녀가 피식 웃었다.
“됐어~ 구질구질하게. 중원씨만큼은 아닌데 그냥 날 잘 따라줘.”
중원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내가 왜 들어가?”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잘생겼나?”
“나 얼굴 안 보잖아~ 알면서.”
중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녀가 웃었다.
“뭐라고 할까…… 같이 있으면 행복해지는 느낌이 좋아.”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뭔가 대접받는달까?”
그리고 중원을 힐끔 봤다.
“그렇다고 중원씨랑 있으면서 그런 느낌 안 받았다는 건 아니고~.”
“결혼할 사람이 왜 자꾸 내 얘기를 해.”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이제 자주 못 보잖아.”
“자주 못 보다니?”
중원이 말했다.
“아예 안 봐야 맞는 거 아닌가?”
그녀가 중원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 싶어?”
“어?”
그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중원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야……지.”
“역시!”
그녀가 웃었다.
“쿨할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보수적이야~.”
“그게 맞지. 결혼한 사람한테 충실해야지. 난 과거일 뿐이고.”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긴 한데…… 나 중원씨 못 잊을 것 같아.”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가끔 만나면 안 될까?”
“음…….”
중원이 한참 생각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왜?”
“나 남들이 얘기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건 좀 못 해.”
중원이 그녀를 휙 돌아봤다.
“불륜이잖아!”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무 구식이다~.”
“결혼식이 언제인데?”
“아마 곧~?”
그녀가 웃었다.
“왜? 올라고? 괜찮겠어?”
“아니. 그냥 물어봤어. 내가 거길 왜…….”
중원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웃었다.
그러고는 중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은 그냥…….”
그녀가 중원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오늘만 생각하자.”
그날 두 사람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둘만의 밤을 보냈다.
알람 소리에 중원이 눈을 떴다.
출근 시간이었다.
부지런히 씻고 나온 중원은 침대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중원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마친 중원은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 간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꼭 너만의 인생을 써.”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행복하게.”
중원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중원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감겨 있던 그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래야지~.”
그녀는 한동안 중원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호텔 밖으로 나온 중원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중원의 걸음이 느려졌다.
“네. 그런데요?”
수화기 너머의 이야기를 듣던 중원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그리고 완전히 걸음을 멈췄다.
“지금 애들 어디 있어요?”
잠시 침묵.
중원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표정이 사라졌다.
제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