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8화 | 제로의 명령
총성이 그치지 않는다.
창고 안 조명이 절반쯤 나가 있어서, 총구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벽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진다.
중원은 컨테이너 뒤에서 숨을 고르며 이어폰에 손을 댄다.
“HAWK. 3층 창고 우측, 아레스 쪽 인원 넷.”
“보고 있습니다.”
태성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다.
무전기 너머로도 그가 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건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측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제압 후 박정호 위치로 이동.”
“안 돼.”
“뭐라고요?”
“박정호가 먼저야.”
짧은 침묵.
총소리 사이로 태성의 숨소리가 들린다.
“내 팀입니다. 내 지휘를 따르십시오.”
중원이 컨테이너 모서리로 몸을 붙인다.
반대편에서 뮤즈가 몸을 낮춘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 판단이면 박정호 죽어.”
“당신이 뭘 안다고—”
“3분.”
“뭐?”
“저쪽이 박정호 위치 알아내는 데 남은 시간.”
태성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무전기 채널 너머로 짧게 욕설이 섞인 지시가 들린다.
팀을 재배치하는 소리다.
중원은 그 틈에 움직인다.
물류 팔레트 사이를 낮은 자세로 가로지르는 동안 총알이 머리 위 철제 선반을 때린다.
파편이 떨어진다.
중원은 멈추지 않는다.
세 번째 통로 끝.
낡은 관리 사무실 문틈으로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온다.
거기다.
그 순간 아레스 쪽 저격수 하나가 각도를 잡는 게 눈에 들어온다.
위치가 나쁘다.
중원의 사선이 아니다.
“뮤즈, 좌측 2시.”
응답이 없다.
“뮤즈.”
여전히 없다.
중원의 심장이 한 박자 빨라지는 순간.
어디선가 짧은 격발음이 들리고, 위쪽에 있던 저격수가 쓰러진다.
태성이다.
“확인. 측면에 하나 더 있었습니다. 당신 사선에는 안 잡혔을 텐데.”
중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솔직히 할 말이 마땅치 않다.
태성이 아니었으면 뮤즈가 저 총알을 맞았다.

관리 사무실 문을 밀어 열자 박정호가 바닥에 웅크린 채 검은 하드케이스를 끌어안고 있다.
얼굴은 창백하고 왼쪽 어깨에서는 피가 배어 나온다.
“박정호 확보.”

중원이 무전을 넣는 동시에 통로 반대편에서 태성이 팀을 이끌고 들어온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서로가 자신의 몫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안다.
그게 오래가지는 않는다.
“철수 지원 요청합니다. 저는 여기서 지휘합니다.”
“아니.”
태성의 얼굴이 돌아온다.
“또 뭡니까.”
“하드케이스 먼저 확인해.”
케이스를 열자 안은 비어 있다.
정확히는 저장장치가 들어 있었던 슬롯 하나가 비어 있다.
태성의 표정이 굳는다.
“이게 다입니까? 그럼 저희가 지킨 게 뭡니까.”
중원은 케이스 안쪽을 확인한다.
태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내 팀에 명령합니까!”
창고 안 총성은 이제 거의 잦아들어 있다.
그래서 태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중원이 천천히 일어서 태성을 마주한다.
“잘 들어.”
멀리서 마지막 총성 하나가 울린다.
그리고 멎는다.
중원의 목소리는 오히려 낮아진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투입된 작전은 소속이 어디든 현장 지휘권이 나한테 있어.”
태성의 얼굴이 굳는다.
“뭐?”
중원이 한 걸음 가까이 간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명령 따라.”

태성은 중원을 노려본다.
뭔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반박할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싸움을 계속해봐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
박정호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다.
흐릿한 눈동자가 중원을 향한다.
입술이 힘겹게 움직인다.
“……이중원?”
중원의 표정이 멈춘다.
“저를 압니까?”
박정호가 힘겹게 손을 뻗어 중원의 손목을 잡는다.
손아귀에는 힘이 거의 없다.
“누나랑…… 정말 많이 닮았네.”
중원의 눈빛이 바뀐다.
“누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박정호의 입술이 움직인다.
“사고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박정호가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
숨을 한번 몰아쉰다.
“그 얘기가 아니야.”
손에서 힘이 빠진다.
의식을 잃는다.
중원은 박정호의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구급대원을 부른다.
중원의 집.
현관문이 조용히 열린다.
중원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거실 불은 꺼져 있고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다.
소파에는 진이가 잠들어 있다.
담요 한쪽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있다.
돌봄 이모가 조용히 나와 담요를 다시 덮어준다.
“진이가 삼춘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어요.”
중원이 잠든 진이를 내려다본다.
“많이 기다렸어요?”
“괜찮은 척하는데…… 많이 불안한가 봐요.”
이모가 방으로 들어가고 중원은 소파 앞에 앉는다.
잠든 줄 알았던 진이가 천천히 눈을 뜬다.
“삼춘.”
“왜 안 잤어.”
“기다렸어.”
“왜.”
진이가 한동안 중원을 쳐다본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한다.
“삼춘도 안 들어올까 봐.”
중원은 아무 말도 못 한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다.
어떤 말도 이 아이가 겪은 일을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아.”
“응.”
“삼춘은 온다.”
진이가 중원의 얼굴을 바라본다.
“……진짜?”
중원이 진이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인다.
“내가 어디 가겠냐.”
그때 방문이 열린다.
환이가 눈을 반쯤 감은 채 걸어 나온다.
“삼춘 왔어?”
“어.”
환이는 별말 없이 중원 옆에 털썩 앉는다.
“너는 왜 나왔어.”
“물.”
중원이 주방 쪽을 한번 본다.
“물은 주방에 있는데 왜 내 옆에 앉아.”
환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진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쟤도 기다렸어.”
“누나!”
“맞잖아.”
중원의 입가에도 오랜만에 웃음이 걸린다.

잠깐이지만.
이 순간에는 ZERO도 없다.
하드케이스도 없다.
태성의 고함도 없다.
그저 삼춘과 두 아이만 있다.
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한다.
중원이 화면을 확인한다.
뮤즈다.
[박정호 깨어났어요.]

중원의 표정에서 조금 전의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진다.
몇 초 뒤.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선배를 찾고 있어요.]

중원이 아이들을 바라본다.
진이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환이는 벌써 소파에 기대 잠들어 있다.
중원의 시선이 두 아이에게 잠시 머문다.
방금 전까지는 삼춘이었다.
이제 다시.
ZERO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