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삼춘 3화 그날의 기억 중원과 가족의 과거를 담은 장면

삼춘 3화 | 그날의 기억

삼춘
제3화. 그날의 기억

집 안이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실을 돌아다니며 냉장고를 열어보고, 게임기를 찾고, 이것저것 떠들어대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피곤함을 이기지는 못했다.

중원은 방문을 살짝 열었다.

진이와 환이는 나란히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진이는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벽 쪽을 향하고 있었고, 환이는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

중원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진이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환이의 머리맡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치웠다.

그리고 한동안 아이들을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컸냐.”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혼잣말이었다.

문틀에 등을 기대자 오래된 기억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때는 진이도 없었고.

환이도 없었다.

그리고 중원에게도 아직 제대로 된 집이 없었다.

“야,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누나가 식탁에 앉아 있는 중원을 보며 물었다.

중원은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은 채 고개를 들었다.

“왜? 나 나가라고?”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야.”

“그게 나가라는 소리잖아.”

“내가 언제 나가랬어?”

“지금 얼굴이 나가라고 하는데.”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밥 얻어먹고 빨래까지 맡기면서 말은 잘한다.”

중원은 아무렇지 않게 라면 국물을 마셨다.

“가족끼리 그럴 수도 있지.”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매형이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중원아.”

“예, 매형.”

“너 또 라면 먹냐?”

“누나가 밥을 안 줘요.”

“야!”

누나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매형이 웃으며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해줄게.”

중원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감탄했다.

“역시 매형밖에 없다니까.”

누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둘이 그냥 같이 살아.”

소설 삼춘 3화 젊은 중원이 누나와 매형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과거 모습
그 시절 중원에게 누나와 매형의 집은 유일하게 마음 놓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중원은 한동안 누나와 매형의 집에서 지냈다.

아침이면 누나가 깨웠고, 매형은 늦게 들어오는 중원을 위해 식탁 위에 밥을 남겨두곤 했다.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집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중원은 병원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작은 아기가 투명한 침대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은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한참을 바라봤다.

“쟤가 진이야?”

옆에 있던 매형이 웃었다.

“그래.”

“너무 작은데?”

“애가 처음부터 너만 하면 큰일이지.”

중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되게 못생겼다.”

뒤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너 나가.”

“아니, 갓난애들은 원래 좀 그렇잖아.”

“당장 나가.”

매형은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며칠 뒤 처음 진이를 품에 안았을 때는 달랐다.

중원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야…… 얘 움직이는데?”

누나가 한숨을 쉬었다.

“애니까 움직이지.”

“어떻게 잡아야 돼?”

“목 받쳐.”

“이렇게?”

“조심해!”

“알았어!”

중원은 얼굴까지 굳힌 채 진이를 안고 있었다.

조그마한 손 하나가 중원의 검지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중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동안 그 작은 손만 바라봤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다.

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환이가 태어났다.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삼춘!”

어린 진이가 중원의 등에 올라탔다.

“야, 내려가.”

“싫어.”

“허리 나가.”

“삼춘 늙었어?”

“누가 그래?”

“엄마가.”

주방에서 누나가 소리쳤다.

“내가 언제!”

이번에는 환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달려왔다.

“삼춘! 이거 고쳐줘.”

“왜 맨날 나보고 고치래?”

“삼춘 컴퓨터 하는 사람이잖아.”

중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 하는 사람이 자동차도 고쳐야 되냐?”

환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중원은 결국 장난감 자동차를 받아들었다.

“줘봐.”

소설 삼춘 3화 어린 진이와 환이가 삼촌 중원과 함께 즐겁게 놀던 과거 모습
진이와 환이에게 중원은 어려운 삼촌이 아니라 언제든 함께 놀아주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랐다.

중원도 조금씩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며칠.

그다음에는 몇 주.

때로는 몇 달 동안 연락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누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중원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동생이 가끔 집에 돌아오면 밥을 차려주고.

다치면 잔소리를 했다.

“너 또 어디서 다쳤어?”

“넘어졌어.”

“맨날 넘어져?”

“내가 좀 잘 넘어져.”

“병원 가봐.”

“갔다 왔어.”

누나는 중원의 팔에 붙은 붕대를 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식탁에 국을 올려놓았다.

“밥 먹어.”

그게 전부였다.

중원이 눈을 떴다.

어두운 방문 너머로 진이와 환이가 보였다.

기억 속 작은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중원은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TV는 꺼져 있었다.

방금 전 뉴스 화면만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저렇게 축소될 일이 아닌데…….’

중원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다시 내려놓았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중원의 누나와 매형은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아, 학교 늦는다.”

방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

“알았어!”

환이는 식탁에 앉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매형이 현관에서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오늘 늦을 것 같아.”

누나가 가방을 들며 물었다.

“또?”

“확인할 게 좀 있어.”

“요즘 계속 늦네.”

매형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웃었다.

“이번 것만 끝나면 좀 괜찮아질 거야.”

누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다.

같은 시각.

주차장 한쪽.

누군가가 차량 아래에서 천천히 몸을 빼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차량 바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작은 공구 가방이 들려 있었다.

차량 외관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멀리서 자동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누나와 매형이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대편 출구로 걸어갔다.

소설 삼춘 3화 정체불명의 인물이 중원 누나 부부의 차량에 손을 대는 장면
누나와 매형은 자신들의 평범한 출근길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계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잠시 뒤.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누나는 조수석에서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매형은 평소처럼 운전대를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대화도 없었다.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차선을 바꾸고.

라디오에서는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차량은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매형이 계기판을 한번 바라봤다.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왜 그래?”

누나가 물었다.

“아니…….”

매형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이 예상보다 늦게 반응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잠깐.”

누나가 고개를 들었다.

“왜?”

차량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앞쪽 도로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매형이 핸들을 돌렸다.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났다.

누나가 손잡이를 붙잡았다.

“여보!”

매형은 이를 악물었다.

차량이 도로 가장자리 구조물을 들이받았다.

쾅!

차체가 크게 튕겨 나갔다.

그리고.

아주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다음 순간.

차량 아래쪽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콰앙―!

폭발음이 도로 전체를 뒤흔들었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쳤다.

멀리 있던 차량들이 급히 멈춰 섰다.

누군가 차에서 내려 휴대폰을 꺼냈다.

불길 속 차량은 더 이상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날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

검은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도로를 빠져나갔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창밖의 검은 연기를 바라봤다.

휴대폰 화면에 짧은 문장이 떠 있었다.

완료.

그리고 메시지는 곧바로 삭제됐다.

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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