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4화 | 사고
새벽 2시 17분.
중원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테이블 위 노트북 화면만이 어둠 속에서 중원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에는 몇 장의 사진이 떠 있었다.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차량.
검게 그을린 도로.
부서진 가드레일.
그리고 사고 현장 주변에 흩어진 잔해.
중원은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표정은 없었다.
하지만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가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 속 차량이 누나와 매형의 차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원은 마지막 사진을 확대했다.
잠시 바라보다 다시 축소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
“쯧…….”
소파에 몸을 기대며 천장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교통사고.
경찰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그런데 중원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중원은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가 없었다.
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예.”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은?”
중원이 방문 쪽을 바라봤다.
“자요.”
“괜찮고?”
“괜찮을 리가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가 말했다.
“자료 봤냐?”
“대충요.”
“대충?”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내일 들어와.”
“휴가 냈습니다.”
“회사 말고.”
중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
“국으로 들어오라고.”
중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입니까?”
“전화로 할 얘기 아니다.”
“누나 일입니까?”
다시 침묵.
그 짧은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중원의 표정이 굳었다.
“불독.”
처음으로 중원이 상대를 불렀다.
“말해요.”
“내일 들어와.”
전화가 끊어졌다.
중원은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중원은 평소 출근할 때와 다르지 않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진과 환에게는 회사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
두 아이가 아직 학교에 갈 상황은 아니었다.
현관을 나서기 전 중원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삼춘.”
진이 불렀다.
“왜?”
“빨리 와.”
중원이 잠시 진을 바라봤다.
“그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원은 휴대폰을 꺼냈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저 오늘도 현장입니다.”
상대가 뭐라고 말하자 중원이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나중에 술 살게요.”
통화를 끝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중원의 웃음기도 동시에 사라졌다.
서울 도심.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정부기관 건물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정문에 기관을 설명하는 문구도 없었다.
중원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출입문.
신분 확인.
두 번째 출입문.
생체 인증.
그리고 엘리베이터.
중원이 카드를 갖다 대자 일반 층에는 표시되지 않는 버튼 하나가 켜졌다.
문이 열렸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중원을 알아봤다.
누군가는 가볍게 목례했고.
누군가는 걸음을 멈췄다.

“선배.”
중원이 고개를 돌렸다.
서른 초반의 여자가 서 있었다.
명현이었다.
중원은 그녀를 바라보다 짧게 말했다.
“오랜만이네.”
명현은 웃지 않았다.
“괜찮아요?”
중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선배.”
“괜찮아.”
명현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중원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
“애들은요?”
“집에 있어.”
“진이랑 환이…….”
명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나중에 가봐도 돼요?”
중원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조금 표정이 풀렸다.
“그래.”
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독이 기다려요.”
중원은 다시 복도 끝을 바라봤다.
“알아.”
회의실 문이 닫혔다.
불독은 중원에게 아무 말 없이 태블릿 하나를 밀어줬다.
중원이 화면을 봤다.
누나와 매형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중원에게 익숙한 기관명이 적혀 있었다.
국가생물위협대응연구원.
중원의 눈이 잠시 멈췄다.
“이걸 왜 다시 보여주는 겁니까?”
불독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확인할 게 있으니까.”
“뭘요.”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중원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보고서 올렸잖아요.”
“공식 보고 말고.”
불독의 눈이 중원을 향했다.
“개인적으로 어디까지 들어갔냐고.”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독이 혀로 입술을 한번 훑었다.
“이중원.”
“…….”
“네 누나하고 매형이 관련돼 있다는 거 알고 있었지?”
중원의 시선이 불독에게 향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석 달 전.”
불독의 표정이 굳었다.
“석 달?”
“예.”
“왜 보고 안 했어?”
“확실한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혼자 캤냐?”
중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불독이 낮게 욕을 뱉었다.
“미친 새끼.”
중원은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었다.
“누나하고 매형은 개발팀에 있었습니다.”
“알아.”
“하지만 둘 다 반대했어요.”
불독의 눈빛이 변했다.
“뭘?”
중원이 화면을 넘겼다.
검게 가려진 문서 하나가 나타났다.
문서 상단에는 보안등급 표시와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 코드가 적혀 있었다.
PROJECT EIDOLON.
중원이 말했다.
“이걸 밖으로 내보내는 거요.”

불독이 중원을 바라봤다.
“시판 계획까지 알고 있었냐?”
“시판인지 다른 형태의 이전인지까지는 몰랐습니다.”
중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누나가 반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누나가 직접 말했어?”
“아니요.”
“그럼?”
중원은 태블릿 화면을 바라봤다.
“내가 알아냈습니다.”
불독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중원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찾아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래서 보고 있었어요.”
“뭘?”
“연구원 주변.”
“왜?”
중원이 잠시 말이 없었다.
“이 물건.”
그가 뒤를 돌아봤다.
“우리도 위험하다고 판단했잖아요.”
불독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이돌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의 관심 대상이었다.
단순한 연구개발 사업이 아니었다.
잘못된 손에 넘어갈 경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 측도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CIA가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이 말했다.
“미국 쪽도 아직 붙어 있습니까?”
“붙어 있어.”
“CIA?”
“그래.”
중원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불독이 물었다.
“왜?”
“아닙니다.”
중원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여섯 달 만에 갑자기 연락해왔던 여자.
그리고.
결혼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여자.
소울메이트.
중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독이 태블릿을 다시 가져갔다.
“문제는 여기부터야.”
화면이 바뀌었다.
사고 현장 사진이 나타났다.
중원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감정이 사라졌다.
“경찰은 차량 결함 가능성을 보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는 단순 교통사고.”
“그것도 봤고요.”
불독이 다음 화면을 넘겼다.
“우리는 다르게 본다.”
중원의 시선이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사고 차량을 우리가 가져왔다.”
중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 있습니까?”
“분석실.”
“결과는요?”
불독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중원이 그를 바라봤다.
“뭐가 나왔습니까?”
불독이 천천히 말했다.
“아직 확정된 건 없어.”
“그럼 왜 불렀어요.”
“확정된 건 없는데.”
불독이 화면을 끄며 말했다.
“이상한 게 하나 나왔어.”
중원의 턱이 굳었다.
“뭡니까.”
불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봐.”
두 사람은 지하 분석실로 내려갔다.
보안문이 열렸다.
넓은 공간 한가운데 검게 타버린 차량이 놓여 있었다.
중원은 입구에서 멈춰 섰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차량으로 다가갔다.
누나가 타고 있던 차였다.
매형이 운전했던 차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던 차였다.
중원은 아무 말 없이 차량을 바라봤다.
불독도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후 중원이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분석관이 모니터 하나를 켰다.
“사고 충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흔적이 있습니다.”
중원의 눈이 모니터를 향했다.
“정확히 말해요.”
분석관이 잠시 불독을 바라봤다.
불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석관이 말했다.
“사고 전에 누군가 차량에 손을 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중원의 시선이 다시 차량으로 향했다.

사고가 아니었다.
중원은 차량 앞에 서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불독은 그런 중원을 바라봤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중원이 화가 났을 때는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해진다.
지금처럼.
중원이 물었다.
“이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했는지 찾고 있습니까?”
불독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중원이 천천히 불독을 바라봤다.
“아니요.”
“뭐?”
중원의 목소리는 낮았다.
“나는 석 달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불독의 표정이 굳었다.
중원은 다시 불에 탄 차량을 바라봤다.
그제야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완성됐다.
자신은 에이돌론을 보고 있었다.
연구원 주변도 보고 있었다.
누나와 매형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원은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다.
위험한 것은 연구물이 아니었다.
그 연구물을 둘러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누나와 매형이 먼저 치렀다.
중원이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불독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1년 넘게 보지 못했던 눈이었다.
현장에 있던.
이중원의 눈이었다.
제4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