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6화 | 복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검은 세단이 도로 위로 올라선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명현이다.
중원은 조수석에 몸을 기대고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본다.
한 남자의 신상정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박정호. 46세.
국가생물위협대응연구원 선임연구원.
누나와 매형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핵심 연구원 일곱 명 중 한 명.
그리고 외부 이전을 끝까지 반대했던 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명현이 운전대를 잡은 채 중원을 힐끗 본다.
“선배.”
“왜.”
“진짜 괜찮아요?”
“뭐가?”
“몸.”
중원의 시선은 여전히 태블릿에 머물러 있다.
“멀쩡해.”
“1년 전에 총 맞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1년 전이잖아.”
“아까 걸을 때 봤어요.”
그제야 중원이 고개를 돌린다.
“뭘?”
“아픈 쪽으로 몸 안 돌리는 거.”
중원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번진다.
“너 아직도 사람 관찰하는 버릇 못 버렸냐?”
명현은 앞을 바라본 채 대답한다.
“선배한테만 그래요.”
잠깐의 침묵.
중원은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린다.
“운전이나 해.”
“하고 있거든요.”
명현의 입가에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다.

그때 중원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화면에는 이진이라는 이름이 떠 있다.
중원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어.”
― 삼춘, 오늘도 늦어?
“조금.”
― 이모가 저녁 해주신대.
전화기 너머로 환이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 누나! 치킨 먹는다고 해!
진이의 목소리가 곧바로 커진다.
― 너 아까 이모한테 김치볶음밥 먹는다고 했잖아.
― 치킨도 먹을 수 있잖아!
중원이 웃는다.
“이모 힘들게 하지 말고 주는 거 먹어.”
― 삼춘은?
“들어가서 먹지.”
잠시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진다.
이번에는 진이의 목소리가 작다.
― 빨리 와.
중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진다.
“그래. 최대한 빨리 갈게.”
통화가 끝난다.
명현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진이예요?”
“응.”
“애들은 괜찮아요?”
중원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괜찮은 척하는 거겠지.”
명현은 더 묻지 않는다.
“그래도 국에서 보내준 이모님이 와 계셔.”
“믿을 만한 분이에요?”
“불독이 직접 붙였어.”
그제야 명현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 보인다.
“그럼 됐네요.”
진이와 환이에게는 그저 중원이 급하게 구한 돌보미 이모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국에서 신원 검증을 마친 생활보호 담당자.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들을 어디로 이동시키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까지 교육받은 사람이다.
중원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불독이 가장 먼저 준비한 것 역시 아이들의 안전이었다.
명현이 슬쩍 중원을 본다.
“시간 되면 저도 한번 갈게요.”
“애들 보러?”
“네.”
중원이 고개를 돌린다.
“나는 아닌가 보네.”
명현의 눈에 웃음기가 번진다.
“선배는 지금 보고 있잖아요.”
중원이 헛웃음을 흘린다.
“요즘 말이 많이 늘었어.”
“누구 때문에요.”
이번에는 중원이 대꾸하지 않는다.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남아 있다.
잠시 후 차가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사람이 사라진 지 이틀째다.
현관문이 열린다.
중원이 먼저 안으로 들어선다.
박정호의 집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하다.
거실 한쪽에는 마시다 남은 생수가 놓여 있고, 식탁 위에는 뜯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 있다.
명현이 장갑을 낀다.
“경찰은 아직 안 들어왔어요.”
“실종 신고가 없으니까.”
“연구원에서는요?”
“휴가 처리.”
명현의 시선이 중원에게 향한다.
“사람이 이틀째 연락이 안 되는데 휴가?”
“그러니까 이상한 거지.”
중원은 대답과 동시에 집 안을 천천히 훑는다.
침실.
욕실.
서재.
옷장.
누군가 급하게 뒤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싸움이 벌어진 흔적도 없다.
명현이 냉장고 문을 연다.
“음식도 그대로예요.”
중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책상 앞에서 멈춘다.
노트북은 없다.
그런데 충전기는 그대로다.
휴대전화 충전기도 남아 있다.
서랍을 열자 여권까지 나온다.
중원이 낮게 중얼거린다.
“도망간 사람 집이 아니야.”
명현이 가까이 다가온다.
“급하게 끌려간 걸까요?”
“그것도 아니고.”
“왜요?”
중원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한다.
“신발.”
명현도 현관을 바라본다.
신발장 한쪽이 비어 있다.
“운동화 하나가 없네요.”
“그리고 겉옷 하나.”
중원은 다시 집 안을 바라본다.
“자기 발로 나갔어.”
“그런데 여권도 놓고?”
“멀리 갈 생각이 없었던 거야.”
중원의 말이 잠시 끊긴다.
“아니면…….”
명현이 기다린다.
“멀리 갈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서재를 살피던 중원의 움직임이 멈춘다.
“명현아.”
“네.”
“여기 원래 뭐가 있었을 것 같냐?”
명현이 중원의 옆으로 다가온다.
책장 한 칸에 먼지가 쌓여 있다.
그런데 가운데 부분만 유난히 깨끗하다.
명현이 눈으로 크기를 가늠한다.
“책은 아닌데.”
“그래.”
중원이 몸을 낮춘다.
책상 아래쪽에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보인다.
찢어진 메모다.
남아 있는 글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ARES
명현의 표정이 달라진다.
“아레스?”
중원은 메모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들어본 적 있어?”
“없어요.”
“나도.”
중원이 휴대전화를 꺼낸다.
“불독.”
― 말해.
“ARES라는 이름 확인해봐.”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 철자.
“A, R, E, S.”
키보드 소리가 멈춘다.
짧은 침묵.
그리고 불독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 어디서 찾았어?
중원의 눈빛이 달라진다.
“박정호 집.”
다시 침묵.
이번에는 조금 길다.
“왜.”
― 손대지 말고 사진만 찍어.
중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알고 있네.”
― 중원아.
“뭐야, 아레스가.”
불독의 목소리가 단호해진다.
― 돌아와.
“불독.”
― 국으로 돌아와. 지금.
전화가 끊긴다.
중원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서 내리지 않는다.
명현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뭔데요?”
중원이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린다.
“모르겠어.”
“불독 선배 반응이 그런데요?”
“그러니까.”
중원의 시선이 다시 찢어진 메모로 향한다.
불독은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명현이 한 손을 들어 보인다.
“잠깐.”
중원의 움직임이 멈춘다.
명현이 창가로 다가간다.
커튼 사이를 아주 조금 벌린다.
아파트 건너편 도로.
검은 SUV 한 대가 서 있다.
“선배.”
중원이 명현의 옆으로 다가선다.
“저 차.”
“언제부터 있었어?”
“우리가 들어올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중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차 안은 보이지 않는다.
“번호.”
명현이 휴대전화를 든다.
그 순간 SUV의 브레이크등이 켜진다.
“움직여요.”
검은 SUV가 천천히 도로로 빠져나간다.
명현이 중원을 바라본다.
“따라가요?”
중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1년 전이었다면 이미 현관을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원은 움직이지 않은 채 멀어지는 차량을 바라본다.
“아니.”
명현의 눈에 의외라는 표정이 스친다.
“왜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확인하러 온 놈이면 따라붙는 순간 우리가 가진 패를 보여주는 거야.”
명현은 잠시 중원을 바라본다.
그러다 살짝 웃어 보인다.
“왜.”
“아니에요.”
“말해.”
“진짜 돌아왔구나 싶어서.”
중원의 시선이 명현에게 향한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뛰어나갔을 텐데.”
“나도 철들었어.”
명현이 고개를 살짝 젓는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중원의 입가에도 잠깐 웃음기가 번진다.
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차량 조회해.”
“네.”
“그리고 단지 CCTV 확보하고.”
명현의 표정도 다시 현장요원의 얼굴로 돌아온다.
“알겠습니다.”
중원은 손에 든 메모를 다시 내려다본다.
ARES.
처음 보는 이름이다.
그런데 불독은 알고 있다.

국가전략위기대응국.
불독은 혼자 회의실에 앉아 있다.
정면 모니터에는 명현이 전송한 사진이 떠 있다.
찢어진 종이.
ARES.
불독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본다.
표정에서 평소의 여유가 사라져 있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움직인다.
다른 화면이 열린다.
ARES GLOBAL.
겉으로는 국제 바이오안보와 의료기술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
그러나 국 내부 자료에 붙어 있는 표시는 전혀 다르다.
내부 분류: 관찰 대상
세부 정보: 보안 제한
불독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벌써 들어왔나…….”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린다.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선다.
40대 초반.
짧은 머리.
단단한 체격.
걸음과 자세에는 오랫동안 몸에 밴 군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자가 불독 앞에 멈춰 선다.
“부르셨습니까.”
불독이 맞은편 의자를 눈짓한다.
“앉아.”
남자가 자리에 앉는다.
불독이 서류 하나를 테이블 위로 밀어 보낸다.
박정호의 사진이다.
“이 사람 찾아.”
남자의 시선이 사진에 머문다.
“체포입니까?”
“아니.”
“그럼 보호?”
“그것도 아직 몰라.”
남자가 고개를 들어 불독을 바라본다.
“임무가 뭡니까?”
불독은 잠시 대답하지 않는다.
“박정호 확보.”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다른 팀 하나가 움직이고 있어.”
남자의 눈빛이 달라진다.
“어느 소속입니까?”
“알 필요 없어.”
“작전지역이 겹칠 가능성은요?”
“있어.”
“그러면 최소한 식별정보는 받아야 합니다.”
불독이 고개를 젓는다.
“접촉하지 마.”
남자는 아무 말이 없다.
불독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된다.
“서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여.”
남자가 서류를 집어 든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문으로 향한다.
그 순간 불독의 목소리가 뒤에서 붙잡는다.
“팀장.”
남자가 돌아선다.
“한 가지 더.”
불독의 표정이 굳는다.
“다른 팀보다 먼저 박정호를 찾아.”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불독은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 기다리던 남자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짧게 경례한 뒤 회의실을 나간다.
문이 닫힌다.
불독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길게 숨을 내쉰다.
책상 한쪽에 또 다른 사진이 놓여 있다.
이중원.
불독의 시선이 사진 위에 멈춘다.
“네가 얌전히 움직일 리가 없지.”
중원을 막기 위해 만든 팀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는 중원의 가족이 걸려 있다.
이성을 잃고 선을 넘는 순간, 누군가는 중원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원이 한 방향을 보고 달린다면 다른 방향에서 같은 적을 추적할 눈이 필요하다.
불독은 처음부터 두 갈래로 움직일 생각이다.

국으로 돌아가는 차 안.
명현의 태블릿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린다.
“선배.”
“왜.”
“아까 그 SUV.”
중원의 시선이 태블릿으로 향한다.
“조회됐어?”
명현의 표정이 묘하다.
“번호는 정상이에요.”
“차주는?”
“법인.”
“어디.”
명현이 태블릿 화면을 중원 쪽으로 돌린다.
처음 보는 회사명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 아래 등록된 모기업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중원의 눈빛이 달라진다.
차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명현이 먼저 입을 연다.
“우연일까요?”
중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박정호.
누나와 매형.
에이돌론.
그리고 아레스.
서로 떨어져 있던 조각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가지가 이상하다.
“명현아.”
“네.”
“박정호가 도망친 거라면…….”
중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왜 아레스가 아직 박정호 집을 보고 있었을까.”
명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다.
중원이 천천히 말을 잇는다.
“못 찾은 거야.”
“박정호를요?”
“그래.”
중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놈들도 박정호를 찾고 있어.”
그 순간 중원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불독이다.
중원이 전화를 받는다.
“말해.”
― 바로 국으로 와.
“가고 있어.”
― 그리고 중원아.
“왜.”
잠시 침묵.
불독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온다.
― 아레스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놈들이다.
중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대답은 없다.
통화가 끊긴다.
중원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본다.
명현이 묻는다.
“뭐래요?”
중원이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우리가 찾는 사람이 하나 늘었어.”
“누구요?”
중원의 시선이 창밖 어딘가를 향한다.
“박정호를 찾는 놈들.”
서울 어딘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한 남자가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는 조금 전 박정호의 아파트에서 나온 중원과 명현의 모습이 떠 있다.
남자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화면 속 중원의 얼굴이 크게 확대된다.
뒤에서 영어로 된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창을 열어 중원의 얼굴을 조회한다.
잠시 후 결과가 나타난다.
ACCESS DENIED
SECURITY CLEARANCE INSUFFICIENT
남자의 표정이 굳는다.
다시 조회한다.
결과는 같다.
그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원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구야, 이 새끼.”
모니터 속 중원은 명현과 함께 차에 올라탄다.
자신의 얼굴이 누군가의 화면에 떠 있다는 사실을 중원은 아직 모른다.

박정호를 찾는 사람은 이제 셋이다.
중원과 뮤즈.
불독이 움직인 또 하나의 국가 첩보팀.
그리고 아레스.
누가 먼저 박정호에게 도착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박정호가 배신자인지.
도망자인지.
아니면 살아남은 마지막 목격자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하나뿐이다.
중원이 현장으로 돌아온 순간, 누나와 매형의 죽음은 더 이상 하나의 교통사고가 아니다.
그리고 중원 역시 아직 모른다.
자신과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또 하나의 국가 첩보팀이 있다는 사실을.
그를 찾는 세 개의 추적이 동시에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