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12화 | 열람 기록
삼춘
제12화. 열람 기록
밤 10시 47분.
NEXUS SYSTEMS 지하 2층.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사무실은 조용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중원이 먼저 내린다.
뒤이어 명현이 작은 가방을 들고 나온다.
“여기 괜찮아요?”
“국하고 분리돼 있어.”
“회사 전산망은요?”
“그것도 안 써.”
중원은 복도 끝 문을 연다.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장비실이다.
오래된 서버 몇 대와 테스트용 노트북, 각종 부품들이 선반에 놓여 있다.
중원은 가장 안쪽 책상으로 간다.
낡은 노트북 하나를 꺼낸다.
명현이 본다.
“그걸로 열게요?”
“인터넷 연결한 적 없는 장비야.”
“확실해요?”
중원이 전원을 켠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명현이 피식 웃는다.
“이럴 때는 IT 회사 직원 같네요.”
중원은 대꾸하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작은 저장매체를 꺼낸다.
누나가 남긴 물건.
도서관 11번 서가.
14번째 칸.
그곳에서 찾은 작은 저장장치다.

중원은 손바닥 위의 저장매체를 한동안 바라본다.
누나의 글씨가 떠오른다.
국 장비에 연결하지 마.
그리고.
박정호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마.
명현이 옆에 선다.
“긴장돼요?”
“아니.”
“거짓말.”
중원이 명현을 한번 본다.
“조용히 해.”
저장매체가 노트북에 연결된다.
잠시 후 화면에 하나의 폴더가 나타난다.
파일은 하나뿐이다.
EIDOLON_ARCHIVE
중원이 클릭한다.
암호 입력창이 뜬다.
명현이 숨을 내쉰다.
“역시 그냥 열어놓진 않았네.”
화면 아래쪽에 작은 문장이 있다.
PASSCODE REQUIRED
그리고 숫자 하나.
3
중원의 손이 멈춘다.
“세 번.”
“뭐가요?”
“암호 틀리면.”
명현이 화면을 들여다본다.
“삭제?”
“가능성 있어.”
중원은 바로 손을 뗀다.
저장매체를 분리한다.
명현이 묻는다.
“박정호?”
“응.”
박정호에게 직접 전화하지 않는다.
중원은 다른 휴대전화를 꺼낸다.
불독이 마련해 준 일회용 단말기다.
번호를 누른다.
세 번 신호가 간다.
“네.”
박정호다.
중원은 바로 묻는다.
“암호가 필요합니다.”
잠시 침묵.
박정호가 낮게 말한다.
“찾았군.”
“누나가 남긴 저장장치.”
다시 침묵.
“어디서 열고 있습니까?”
“국 밖입니다.”
“누구랑 있죠?”
중원이 명현을 본다.
“명현.”
박정호의 대답이 늦어진다.
“그 사람 믿습니까?”
중원이 잠시 생각한다.
“네.”
명현의 시선이 중원에게 향한다.
중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박정호가 말한다.
“그럼 듣기만 하세요.”
“말씀하세요.”
“암호는 제가 모릅니다.”
중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뭐라고요?”
“선생님 누나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박정호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건 암호를 내가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박정호가 잠시 숨을 고른다.
“찾는 방법을 내가 안다는 뜻이지.”
중원은 말이 없다.
“사진 가지고 있죠?”
중원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한다.
누나가 남긴 가족사진.
11 / 14.
“있습니다.”
“뒷면 말고 앞면을 보세요.”
중원이 사진을 집어 든다.
누나.
매형.
진.
환.
그리고 자신.
평범한 가족사진이다.
“뭘 봐야 합니까.”
“사진 찍은 장소 기억합니까?”
중원이 사진을 바라본다.
몇 초.
기억이 돌아온다.
“제주도.”
“어디요.”
중원의 표정이 조금 변한다.
그때 누나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
환이가 바다를 보며 소리쳤고.
진이 모래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누나는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중원이 천천히 말한다.
“협재.”
박정호가 대답한다.
“영문으로.”
중원은 노트북을 다시 바라본다.
저장매체를 연결한다.
암호 입력창.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HYEOPJAE
엔터.
잠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명현이 숨을 죽인다.
1초.
2초.
화면이 바뀐다.
폴더가 열린다.
명현이 작게 말한다.
“열렸어요.”
박정호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린다.
“중원 씨.”
“네.”
“연구 원본은 거기 없습니다.”
중원은 화면을 바라본다.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건.”
박정호가 잠깐 멈춘다.
“우리가 왜 도망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폴더 안에는 수십 개의 파일이 있다.
회의록.
보안 검토 자료.
접근 기록.
승인 문서.
메일 백업.
몇 개는 암호화돼 있고 몇 개는 열려 있다.
중원은 가장 먼저 날짜순으로 정렬한다.
PROJECT EIDOLON.
처음 몇 달은 평범하다.
연구 진행 보고.
예산 검토.
보안 등급 조정.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문서의 성격이 달라진다.
명현이 화면을 보며 말한다.
“여기부터네요.”
중원도 알고 있다.
프로젝트가 일정 단계에 도달한 이후.
외부 검토 요청이 갑자기 늘어난다.
표본 이동.
연구 데이터 복제.
보안구역 접근.
외부 인력 투입.
기관 밖 반출을 전제로 한 절차까지 포함돼 있다.
중원이 한 문서를 연다.
상단에 빨간 글씨.
특별보안검토
그 아래.
담당 부서는 삭제돼 있다.
승인자의 이름도 없다.
대신 코드 하나만 남아 있다.
SR-4
명현이 묻는다.
“이게 뭔지 알아요?”
“아니.”
“국 코드?”
“적어도 내가 아는 체계는 아니야.”
다음 문서.
다음 문서.
똑같다.
SR-4.
한 번이 아니다.
열두 번.
중원은 파일을 닫는다.
“반복됐어.”
명현도 알아챈다.
“같은 승인권자.”
“아니.”
중원이 고개를 젓는다.
“같은 권한.”
“무슨 차이죠?”
“사람은 바뀔 수 있어.”
중원의 눈이 화면에 고정된다.
“권한은 남아.”
또 다른 폴더.
ACCESS_LOG
수천 줄의 기록이다.
날짜.
시간.
접속 단말.
권한 등급.
박정호가 전화기 너머에서 말한다.
“그걸 보세요.”
중원이 검색창을 연다.
“뭘 찾죠.”
“보호 요청한 날.”
중원의 손이 멈춘다.
누나와 연구팀이 국가 보호를 요청했던 날.
날짜를 입력한다.
기록이 줄어든다.
오후 3시 21분.
연구원 내부 시스템에서 보호 요청이 접수됐다.
3시 24분.
상급기관 전달.
3시 29분.
첫 열람.
명현이 화면을 가까이 본다.
“8분.”
중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보호 요청이 올라간 지 8분 만에 누군가가 문서를 열었다.
열람자의 이름은 없다.
부서도 없다.
단 하나.
권한 등급: S

중원이 화면을 확대한다.
명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이 등급.”
중원이 낮게 말한다.
“일반 직원이 아니야.”
“연구원?”
“아니.”
“정보기관?”
중원의 시선이 다음 줄로 내려간다.
접속 경로.
NSRB-INT
명현이 움직이지 않는다.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다.
국가전략위기대응국.
국.
명현이 먼저 말한다.
“국 내부망.”
“그래.”
“조작 가능성은?”
“있지.”
중원은 기록을 더 내려본다.
3시 31분.
같은 계정이 연구팀 일정표를 열었다.
3시 32분.
박정호의 인사기록.
3시 33분.
누나와 매형의 개인 정보.
3시 35분.
연구팀 차량 등록정보.
중원의 눈빛이 바뀐다.
그리고.
3시 41분.
접속 종료.
명현이 작게 말한다.
“보호 요청을 처리한 게 아니네요.”
중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확인했어요.”
중원의 턱이 굳는다.
그날 이후.
연구팀을 향한 압박이 빨라졌다.
박정호는 사라졌고.
누나와 매형은 죽었다.
중원이 전화기를 든다.
“박정호 씨.”
“보고 있습니까?”
“보호 요청 직후 누군가 국 내부에서 연구팀 자료를 전부 열었습니다.”
박정호가 대답하지 않는다.
중원이 다시 말한다.
“알고 있었습니까?”
오랜 침묵.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복사했습니까.”
“네.”
“누나도 봤습니까?”
“봤습니다.”
중원의 눈이 멈춘다.
박정호가 낮게 말한다.
“그날 이후 선생님 누나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뭘요.”
“국가에 보호를 요청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잠시 멈춘다.
“그런데 보호를 요청한 순간.”
박정호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상대에게 알려준 거라면?”
중원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같은 시각.
국가 특수정보작전팀 상황실.
HAWK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강태성의 눈은 며칠째 같은 기록을 보고 있다.
ARES 차량 이동 기록.
경찰 통제선.
국 내부 전파 시각.
그리고 차량이 실제로 방향을 바꾼 시각.
맞지 않는다.
ARES 차량은 공식 통제 명령이 현장에 전달되기 전에 이미 우회하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강태성이 화면을 노려본다.
“이 새끼들.”
옆에 있던 요원이 고개를 든다.
“팀장님.”
강태성이 시간을 비교한다.
7분.
ARES는 최소 7분 먼저 움직였다.
“현장 전파 기록 다시 가져와.”
“이미 세 번 확인했습니다.”
“한 번 더.”
요원이 자료를 연다.
강태성은 화면을 본다.
국 내부 통제망에서 명령이 생성됐다.
그 뒤 현장으로 전파됐다.
그런데.
ARES 차량은 명령 생성 2분 후 움직였다.
현장 전파 7분 전이다.
강태성의 표정이 굳는다.
현장 경찰이 샌 게 아니다.
자기 팀에서도 아니다.
그보다 위다.
강태성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불독 어디 있어.”
“본부에 있습니다.”
“연결해.”
불독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왜.”
강태성의 목소리다.
“찾았습니다.”
“뭘.”
“ARES가 어떻게 통제선을 피했는지.”
불독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다.
“말해.”
“현장 전파 전에 움직였습니다.”
“몇 분.”
“7분.”
불독이 조용해진다.
강태성이 계속한다.
“경찰에서 샌 거 아닙니다.”
“확실해?”
“예.”
“네 팀은.”
“아닙니다.”
“그럼?”
강태성이 모니터를 본다.
“국 통제망에서 명령이 만들어진 뒤입니다.”
불독이 움직이지 않는다.
강태성이 낮게 말한다.
“안에서 본 겁니다.”
국가전략위기대응국 본부.
불독이 닫힌 문 앞에 선다.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불독이 문을 연다.
넓은 사무실.
창가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국 전략조정실장 윤태준.
쉰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조용한 인상.
목소리도 높지 않다.
하지만 그의 책상을 거치지 않고 움직이는 주요 작전은 거의 없다.
불독이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HAWK가 찾았습니다.”
윤태준이 자리에 앉는다.
“ARES?”
“예.”
불독이 자료를 앞으로 민다.
“내부 정보가 먼저 넘어간 것 같습니다.”

윤태준이 서류를 넘긴다.
“확실해?”
“아직은 정황입니다.”
윤태준은 한동안 기록을 바라본다.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중원이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윤태준이 고개를 든다.
“걔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불독의 눈이 조금 달라진다.
“왜요.”
“확실하지 않은 걸 던져주면.”
윤태준이 서류를 덮는다.
“그놈은 끝까지 물어.”
잠시 후.
“우리가 먼저 확인한다.”
불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문을 나가려는데 윤태준이 다시 부른다.
“그리고.”
불독이 돌아본다.
“중원이 애들.”
“예.”
“보호 확실히 해.”
윤태준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 애들까지 잘못되면 중원이는 못 돌아온다.”
불독이 잠시 윤태준을 바라본다.
“알겠습니다.”
문이 닫힌다.
윤태준은 다시 서류를 펼친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기록을 바라본다.
NEXUS SYSTEMS.
중원은 다른 파일 하나를 연다.
문서 제목.
EIDOLON 외부 이전 검토
명현이 긴장한다.
그러나 내용 대부분은 삭제돼 있다.
검은색 마스킹.
검은색 마스킹.
또 검은색.
남아 있는 문장은 많지 않다.
원본 전체 이전 불가.
핵심 연구진 반대.
대체 절차 검토.
회수 실행기관: ARES GLOBAL
명현이 화면을 바라본다.
“회수.”
중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레스는 연구기관이 아니다.
박정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움직이는 곳이지.
시키는 걸.
중원이 문서를 확대한다.
ARES 위쪽에 있어야 할 승인 주체는 삭제돼 있다.
공백이다.
누가 시켰는지 보이지 않는다.
명현이 말한다.
“ARES는 정말 손이네요.”
중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럼 누가 시킨 거죠?”
중원의 시선이 화면에 박힌다.
“그걸 찾아야지.”
그 순간.
새로운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파일명은 짧다.
READ_LAST
중원이 클릭한다.
영상 파일이다.
화면이 어두워진다.
잠시 후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중원의 몸이 굳는다.
누나다.

연구실.
밤.
카메라는 책상 위에 놓인 것 같다.
누나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조금 지쳐 보인다.
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하다.
“중원아.”
중원의 숨이 멈춘다.
명현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영상 속 누나가 계속한다.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잠깐 웃는다.
슬픈 웃음이다.
“내가 결국 네 도움을 받게 됐다는 뜻이겠지.”
중원의 눈이 흔들린다.
“미안하다.”
짧은 침묵.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정확히 몰라.”
중원은 화면을 바라본다.
“그런데 평범한 회사원은 아니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명현이 천천히 중원을 본다.
영상은 계속된다.
“그래서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었어.”
누나는 카메라 쪽으로 몸을 조금 숙인다.
“중원아.”
이번에는 웃지 않는다.
“EIDOLON만 보지 마.”
중원의 눈빛이 달라진다.
“누가 가져가려고 했는지를 봐.”
잠시 잡음.
화면이 흔들린다.
“그리고.”
누나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호를 요청했던 기록을 꼭 확인해.”
중원은 이미 확인했다.
누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안에 답이 있을 거야.”
화면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마지막 말.
“진이랑 환이는.”
누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린다.
중원의 손이 굳는다.
“부탁해.”
영상이 끝난다.
검은 화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몇 초.
명현이 중원을 본다.
중원은 그대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표정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오른손이 꽉 쥐어져 있다.
명현이 조용히 부른다.
“중원 씨.”
대답이 없다.
“중원 씨.”
중원이 눈을 감았다 뜬다.
“괜찮아.”
명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중원은 저장매체를 분리한다.
“가자.”
“어디요.”
“박정호한테.”
“지금?”
“확인할 게 있어.”
중원이 일어선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불독이다.
중원이 받는다.
“왜.”
불독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어디냐.”
“회사.”
“혼자냐.”
중원이 명현을 본다.
“명현이랑.”
“잘 들어.”
불독이 잠시 숨을 고른다.
“HAWK가 하나 찾았다.”
“뭔데.”
“ARES가 통제선을 피한 시간.”
중원의 눈이 좁아진다.
“현장 전파 전에 움직였어.”
중원은 말이 없다.
불독이 계속한다.
“경찰도 아니고 태성이 쪽에서도 샌 게 아니다.”
중원은 다시 노트북 화면을 본다.
보호 요청.
8분 뒤.
국 내부망 열람.
“중원아.”
불독이 부른다.
중원이 낮게 묻는다.
“국 내부 명령 생성 이후였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진다.
“어떻게 알았어?”
중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화면에는 아직 로그가 떠 있다.
NSRB-INT.
권한 등급 S.
중원이 천천히 말한다.
“나도 찾았어.”
“뭘.”
“누나가 보호 요청했던 날.”
중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8분 만에 누군가 국 내부에서 연구팀 전부를 조회했어.”
불독이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명현도 중원을 바라본다.
“중원아.”
불독의 목소리가 낮다.
“그 기록 가지고 아무 데도 가지 마.”
“왜.”
“지금부터는.”
잠깐의 침묵.
“누가 우리 편인지 나도 모르겠다.”
통화가 끊긴다.
중원은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명현이 묻는다.
“어떻게 할 거예요?”
중원은 화면을 바라본다.
잠시 후 노트북을 닫는다.
“먼저 애들.”
“애들?”
“보호선 다시 확인해야 돼.”
“불독이 붙였다면서요.”
중원이 가방을 집어 든다.
“상대가 국 안을 보고 있다면.”
명현의 표정이 굳는다.
중원이 문으로 향한다.
“우리 보호선도 보고 있을 수 있어.”
어두운 방.
ARES의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예.”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남자는 잠시 듣기만 한다.
“ZERO가 저장장치에 접근한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
“아직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침묵.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쪽은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상대가 길게 말한다.
남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한다.
“보호 인력이 붙었습니다.”
잠시 후.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난다.
옆에 있던 남자가 묻는다.
“접근합니까?”
“아니.”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남자는 어둠 속 모니터를 바라본다.
“보호가 붙으면.”
잠시 멈춘다.
“패턴이 생긴다.”
“…….”
“지금은 건드리지 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ZERO가 뭘 선택하는지 먼저 본다.”
중원은 차에 올라탄다.
명현이 조수석에 앉는다.
시동을 건다.
중원은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누나의 마지막 목소리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진이랑 환이는 부탁해.
중원이 운전대를 잡는다.
그때 휴대전화 화면이 켜진다.
불독에게서 파일 하나가 도착한다.
HAWK가 찾아낸 통제망 기록이다.
중원은 파일을 연다.

시간.
접속 기록.
내부 승인 경로.
중원의 시선이 한 줄에서 멈춘다.
ARES 차량이 움직이기 직전.
국 내부의 누군가가 통제 명령을 열람했다.
접근자 이름은 없다.
그러나 등급은 표시돼 있다.
S.
중원의 표정이 굳는다.
누나의 보호 요청을 열었던 권한.
ARES가 통제선을 피하기 직전 사용된 권한.
같다.
명현이 화면을 본다.
“같은 등급이네요.”
중원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한다.
“이건 정보가 샌 게 아니야.”
명현이 중원을 본다.
중원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누군가 위에서 넘긴 거야.”
